그동안 제가 다뤘던 내용을 다시 살펴보니 크게 집단이성과 프레이밍과 의제설정이론, 이 두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반에는 집단이성에 대해 생각하면서 대중에세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했다면 후반에는 그들에게 메세지를 전달하는 '전달자'에게 초점을 맞추었어요.
처음에는 오손웰즈의 실험에서 왜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부화뇌동을 했는지에 관해 권위에 대한 복종과 연결시켜 생각해봤고 다음에는 일본 대지진 성금 모음과 관련하여 대세와 다른 의견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광우병 촛불 시위와 관련해서는 공포는 대중과 언론 쌍방향조성이다 라는 주제로 이야기해보았구요, 집단이성의 상실(을 지식층의 측면에서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또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상에서 집단압력이 존재할까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았구요, 고 노무현대통령의 추모행사관련 보도와 노암촘스키의 책및 보수와 진보신문을 비교해가면서 미디어가 의제를 어떻게 설정하는지 ,그들이 세상을 보는 틀을 어떻게 짜고 그것이 대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외에도 몇가지 다른 포스팅들이 있지만 다 곁다리거나 그래서 큰 논의의 줄기는 이렇게 살펴볼 수 있겠네요(큰 줄기라기엔 너무 긴 것 같기도 하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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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서로 다른 다양한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다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이 침묵의 나선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더군요. 이 복잡한 세상을 그나마 근접하게 설명해준 좋은 이론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어째뜬 이제부터는 이것이 침묵의 나선 이론 아래 어떻게 설명되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예전에 일본 성금모금운동이 애도의 획일주의로 흐르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구하나 일본에 대하여, 또는 모금활동에 대해 조금이라도 어긋난 소리를하면 네티즌의 뭇매를 맞아야 하는 것이 지금의 사회분위기”라고요.. 당시에는 일본을 도와줘야 한다! 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그것이 과도하다던가 왜 우리가 일본을 도와줘야되 라던가 하는 의견들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간혹 나왔다가도 뭇매를 맞고는 다시 쑤욱 들어가버렸더랬죠. 그러니 인터넷과 언론 매체는 모두 일본에 대한 애도로 가득 찾더랬죠. 바로 이것이 침묵의 나선이론입니다. 대세에 언론에 눌려 소수의 의견을 가진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
이를 이용하면 광우병 촛불 시위에 이야기 하면서 제가 던졌던 질문도 해결됩니다. 당시 집단 이성의 주체라고까지 평가받던 다음의 아고라에서 군중심리가 작동했던 이유! (군중 심리라는 말이 여기 딱 어울리지는 않습니다만) 왜 아무도 이미지로 허상을 만들어내는데도 검열해내지 못했을까요? 바로 그들과 반대의견을 가졌던 소수의 사람들이 숨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 사고의 기본은 물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비스듬하게 보면서 늘 왜? 정말?이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당시에 아고라에서는 ‘광우병은 위험하지 않아요’ 하는 의견들은 묵살당했습니다. 혹여 그런말이 나오면 정부의 돈을 먹었다는 둥, 니나 먹으라는 둥 악플이 꼬리를 달았고 신상이 털리기도 하고 그랫었죠. 그러니 용기있던 한 두사람이 도전했다가 자취를 감춘 후 소수의 의견은 죽 소멸된 것이죠.
근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은 숨은 것이지 자신의 의견을 수정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누군가는 인터넷을 보다보니 내가 틀렸군 할 수도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견표출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전에 인터넷에서는 집단압력이 존재하지 않아요 라고 했던 제 의견은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세의 의견을 형성해서 소수의 의견자들에게 위화감을 주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집단압력이 될 수 있으니까요.
미디어는 대세의 의견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세상을 보는 틀을 제공해주고 사건에 대해 주류의견을 전달해주면서 말이죠. 일단 세상의 보는 틀이라하면, 프레이밍이론과 연결될 수있겠는데 현실에서 보자면 크게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가 있겠네요. 그런데 미디어의 이러한 틀짓기는 문제가 있습니다. 구분은 우리의 사고를 그 틀안에 가두고 차별을 만들어냅니다. 물론여기서 차별이란 단어는 너무 안어울리지만, 어째뜬 그들이 내세운 잣대대로 우리는 사람들을 둘로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진보 아님 보수, 아군 아님 적군... 광우병때는 그 정도가 더 심했던 것 같고 제 생각으로는 조중동과 한겨례 경향이 넘을 수 없는 선을 그어버리게된 중요한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하여간 이제 미디어는 자신이 가진 틀 안에서 주류의 의견들을 마구 전송하기 시작합니다. 권위있는 매체에서 전달된 메시지는 인터넷을 통해서 확산, 분포되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지나고 이 사건이 조금 자리잡을 때 쯤 되면 이제 우리가 이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되는지가 형성이 됩니다. 근데 이 때 주류의견은 다수의 의견이라기보다는 뉴스매체에서는 지배계층(이 것은 앞에 포스팅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아요^^http://dailylifa.egloos.com/613905/ http://dailylifa.egloos.com/666355
), 인터넷에는 활발하게 자신의 의견을 사람들의 의견입니다. 그들의 의견 앞에 소수자들은 침묵하게 되고 자신들이 침묵하니 동조자를 찾을 수 없는 다른 소수자들 역시 집단 압력에 의해 입을 다물게 됩니다. 일본 지진당시의 애도 획일주의와, 황우석 때 진실을 밝히고자했던 PD수첩을 매도했던 사건도요 아마 다른 의견을 가진 자, 진실을 가진 소수의 자들은 분명 존재했을 테지만 그들이 입을 다물어버림으로써 정지를 하지 못하고 마치 파충류떼처럼 무리지어 달려간 것 같네요.
요약하자면 미디어는 지배적인 틀을 제공하고 주류의견을 전달하며 사람들은 그에 따라 주류 의견을 형성하게 되고, 소수자들은 숨어버리며, 제동을 걸어준 존재들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그게 우리 모두의 의견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우루루 몰려다니면서 비합리적인 사고로 ‘군중심리’라는 단어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도와줬을 지도 모르죠..
그러나 지금은 2011년, 걸어다니면서도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저 초등학교때만해도 유니텔썼는데.. 이제는 얼마다 빠르고 다양하게 소식들을 접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하여간 새롭게 등장하는 뉴미디어는 조금 다르게 쓰였으면 합니다. 물론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가 언론의 대안체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1인 미디어에 기존 뉴스보다 떠 빠른 소식통들이죠. 저는 이 것이 변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해주는 사고도 필요하겠죠? 그것이 뉴스가, 신문이 내놓는 틀에 박힌 환경에서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를 할 수 있는 길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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